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와다 켄지 (문단 편집) ==== 80년대 ==== [youtube(z0uueoIzVrI)] [youtube(im8dywyNehA)] [[1980년]] [[1월 1일]]에 발매된 싱글 「TOKIO」는 무대가 전부 가려질 정도로 거대한 패러슈트를 달고 온 몸에 전구를 감고 나오는 등 사와다 켄지 특유의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눈에 띄게 되었다. [[4월 21일]]의 「恋のバッド・チューニング(사랑의 배드 튜닝)」의 무대에서는 빛이 나는 전구를 내장한 투명한 기타와 노래를 부르며 비닐 코트를 찢는 연출과 같은 미래지향적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[[1981년]]에는 더 타이거스의 재결성과 함께 [[5월 1일]]의 「渚のラブレター(물가의 러브레터)」, [[9월 21일]]의 「ス・ト・リ・ッ・パ・ー(스트리퍼)」, [[1982년]] [[1월 10일]]의 「麗人(여인)」 등의 싱글을 다시 직접 작곡을 하는 등 아티스트적인 활동도 더욱 넓혀갔다. [[1982년]] [[9월 10일]]의 「6番目のユ・ウ・ウ・ツ(6번째 우울)」은 솔로로서 오리콘의 싱글 총 매출이 [[야마구치 모모에]]를 제치고 [[1991년]]까지 9년간 역대 1위의 자리를 유지했다. 이후 싱글 판매량은 부진한 성적을 보였으나 [[1983년]] <晴れのちBLUE BOY(맑게 갠 BLUE BOY)>로 홍백가합전에 출장, [[1984년]] [[9월 25일]] 발매된 「AMAPOLA」는 [[스페인]] 작곡가 호세 라칼레가 [[1924년]] 발표한 스탠더드 팝으로, 사와다의 싱글 A면곡으로서는 첫 커버곡이다. 이 곡으로 제35회 [[홍백가합전]]에 출전하며 노래 중 폭발음과 함께 분홍색 의상의 가슴에서 피가 스미는 연출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. 이후 [[1985년]] 1월부터 반년간 휴식기를 가지고 데뷔 이후부터 쭉 소속되어 있었던 [[와타나베 프로덕션]]에서 독립 후 개인 소속사인 [[주식회사 코코로]][* 현 CO-CóLO Corporation]를 설립하고, 레코드사도 폴리돌에서 [[도시바 EMI]]로 이적했다. 동년 6월에 자서전 <내 이름은 줄리>를 발행[* 이후 사와다 켄지는 이 책을 사와다가의 수치라고 말할 정도로 흑역사 취급한다.]하고 동년 결성한 자신의 백밴드 CO-CóLO와 함께 [[8월 8일]] 직접 작사작곡한 싱글 <재와 다아이몬드>를 발매, 영화 에도 출연한다. [youtube(wuyjxE5dL9g)] [[1987년]] 1월, [[이토 에미]]와 18억 1,800만엔의 위자료[* 현재까지 일본 연예계 역사상 3위에 해당하는 금액의 위자료이다.]를 지불하고 이혼, 3월에는 교토 공연 중 무대에서 떨어져 골절로 1개월간 입원했다. [[1988년]]에는 CO-CóLO가 해산하고 [[1989년]]에는 이토와 별거 중이었던 1986년부터 불륜관계였던 배우 [[다나카 유코]][* 유명 드라마 [[오싱]]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이다.]와 재혼한다. 이 때 앨범 <그는 잠들 수 없어>를 발매하고 연말에는 싱글컷 된 수록곡 으로 [[NHK홍백가합전]]에 출장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